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진(李東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24358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동진 하사는 1924년 6월 23일 경강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 12일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에 있는 제3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사단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청천강 선으로 북진작전 중이었고, 제7사단도 평양 북방에서 북진 중이었다. 사단은 평안남도 개천 일대의 비호산에서 11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공군 제1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사단은 11월 22일 묘향산을 향해 공격했으나, 그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적의 공격에 밀려 횡성 북방을 거쳐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미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했고, 사단은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다.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에 배치되었던 사단 장병들은 분전하다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으나, 영월에서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사단은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지휘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적탄에 맞아 4월 2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45판-8면-0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ㅅ-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