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진(李東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704337
  • 전몰일자 : 19510914

공훈사항

이동진 일등중사는 1928년 10월 15일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10월경 제5사단 제15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7사단 제3연대로 전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등중사는 의정부지구전투, 한강방어선전투 등에 투입되어 적의 남진을 지연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낙동강전선에서 분전하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했고, 이때 연대는 경주-문경-충주-서울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초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과 일전을 치른 후 묘향산 남방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공산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맞아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오르내리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양구 북방의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를 공격하여 9월 2일 이를 확보하고, 이후 반복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9월 1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진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2판-6면-09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ㅊ-05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