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진(李東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061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동진 일병은 일본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동진 일병은 당시 미군 사단을 증원하는 한국군으로 카투사(KATUSA) 제도가 생겨 미 제7사단 소속으로 8월 중순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단에 합류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부대인 미 제7사단 장병들과 함께 일본 요코하마 일대에서 승선훈련과 상륙훈련 등을 포함하여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한 후에 9월 14일에 함정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하였다.
미 제7사단은 9월 18일 오후에 후속 부대로서 미 제1해병사단에 이어 상륙했다. 제32연대가 먼저 인천에 상륙하여 인천시가지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해병 제1사단의 우측방을 엄호했다. 이후 사단은 서울-인천 국도의 남쪽인 미 제1해병연대 우측을 책임지게 되었다. 뒤이어 미 제31연대가 인천으로 상륙하여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미 제32연대는 9월 21일 저녁 무렵에 안양 북방 2㎞의 300고지와 영등포 남쪽 고지를 점령하여 서울-수원 국도를 차단하였다. 미 제31연대는 9월 22일 수원비행장을 점령하여 중요한 항공기지를 확보하였다.
이동진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건너 공격했다. 먼저 미 제32연대가 도하하여 공격하고 이어서 한국군 제17연대가 도하하여 남산을 공격했으며, 계속 동남쪽 매봉(121고지)과 뚝섬의 348고지를 공격하여 서울의 주요고지를 탈환했다. 그리고 9월 29일 정오를 기해 수도 서울 환도식을 함으로써 3개월 동안의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던 시민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안겼다. 그러나 북한군 잔적들이 지하로 스며들어 주요시설에 대한 습격 및 방화를 일삼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0월 1일에 건물 지역으로 숨어든 잔적 소탕 중 적들을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6묘역-1판-296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ㅂ-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