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진(李東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302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이동진 일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의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시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진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말, 제6사단 제7연대는 ‘화산탈환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장병들과 함께 신녕 북쪽 5km 지점에서 횡격실을 이룬 표고 828m의 고지 탈환작전에 참가했다. 제7연대는 8월 29일 오전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하여 목표 직전에서 총격전만 반복했다. 이에 제7연대는 8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공격을 실시하자,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철수하였고, 아군은 손쉽게 목표를 탈취했다. 한편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동진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적의 9월 공세를 맞아 화산–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시켰다. 북한군의 공격도 최후 발악적인 형태를 띠며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질세라 제7연대는 9월 7일부터 10일까지 포병 화력과 각 대대의 박격포는 물론 미 공군 전폭기에 의한 근접지원사격을 받아 공격했다. 그 결과 연대는 수천 명의 적을 격멸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결국 북한군의 공격기세가 점점 약화되었고, 9월 12일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제6사단 장병들은 반격작전을 준비하면서 부대정비와 정찰활동을 실시했다. 이동진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9월 14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5면–1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ㅁ-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