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진(李東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419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이동진 일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진 일병이 수색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신녕 북방의 고지군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후 제6사단은 1950년 9월 16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으로 조림산 지역에 강력히 저항하던 북한군을 섬멸하고,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다. 사단은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 일대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화천-김화–신고산–성천 방향으로 진격하였고, 10월 17일에는 양덕을, 19일에는 성천-순천을,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제6사단은 10월 24일부터 시작되는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준비했다. 이동진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반격 및 북진작전 간에 사단의 선두에서 적정을 파악하여 사단사령부에 보고하고 소규모의 적(敵)은 현장에서 격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10월 24일에 희천에서 압록강 변의 벽동과 초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장병들은 통일을 눈앞에 둔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계속 진격하여 10월 26일에 제7연대는 초산 읍내를 점령하였고, 오후에는 바로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중공군은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10월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돌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험준한 산길을 통해 후방으로 철수를 감행했다.
이동진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는 적정 수집과 측후방경계 임무를 수행하며 공격을 선도했으나, 중공군에게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포위망 돌파가 급선무였다. 수색소대원들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수시로 적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으나 잘 극복했다. 그러나 10월 29일에는 중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져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1-ㅂ-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