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지(李東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800639
  • 전몰일자 : 19500918

공훈사항

이동지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며 지연전을 수행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8월 초순, 제6사단은 8월 6일에 선돌주막 남쪽의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연대는 군위, 의흥을 거쳐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하여 제19연대 방어진지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이에 제19연대는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결국은 전투력의 열세로 8월 21일 야간에 방어진지를 민부대에 인계하고 사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런데 북한군 일부가 8월 27일에 화산 및 조림산을 무혈점령하여 신녕 지역이 위험에 처하자, 이날 제19연대는 신속히 신녕 지역으로 투입되어 다음 날인 8월 28일에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8월 30일까지 계속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탈환하지 못했다. 반면 북한군은 9월 1일 야간에 전차 2대를 앞세운 보전협동부대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9월 4일까지 계속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런데 국군 제8사단이 담당했던 영천이 9월 5일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빼앗겼다. 이에 이동지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상급부대 명령에 의해 9월 5일에 제8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영천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즉각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협공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는 영천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연대는 9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준비를 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이에 이동지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정면의 조림산을 공격했으나, 최초 공격 4일간은 악천후로 상급 부대의 화력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또한 북한군이 강력히 저항하여 조림산을 탈취하지 못했다. 그는 9월 18일 조림산 공격전투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ㄷ-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