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준(李東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058
  • 전몰일자 : 19501009

공훈사항

이동준 일병은 전라북도 군산시 영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1훈련소에 배치되었다.
당시 정부와 국군 및 유엔군 지휘부가 대구에 집결되어 있었다. 국군은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을 하기 위해서는 병력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교육을 목적으로 대구에 훈련소를 창설하게 되었다. 1950년 7월 11일 경북 대구에서 제25교육대가 창설된 후, 7월 17일 경상북도 편성관구사령부 제17교육대로 개편되었다가, 8월 14일부로 육군중앙훈련소로 예속된 후 육군 제1훈련소로 개칭되었다.
제1훈련소는 교육대와 보충대로 편성되어 군의 기초적인 교육훈련 및 병기조작과 전술훈련을 실시하는 등 신병양성을 위한 교육훈련에 주력하는 한편 대구지역 향토방위작전도 병행하였다. 6ㆍ25전쟁 개전초기,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를 거듭하여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하게 되자 북한군은 제3사단과 제13사단 그리고 제1사단 등 3개 사단으로 9월 2일부터 다부동 지역을 돌파하고 일부 부대가 팔공산까지 위협하였다.
이때 대구 위기를 실감한 육군본부는 후방근무지원부대인 본부중대, 근무중대, 군악대 및 보충대까지 동원하여 대구 근교에 배치하고, 제1훈련소(대구중앙훈련소)의 국군 신병 1개 대대를 미 제1기병사단 예하 제8기병연대 후방의 도덕산 일대에 배치하여 다부동-대구 축선을 방어하였으며, 이후 이동준 일병과 장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낙동강 선에서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후 반격작전을 전환하여 10월 1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국경에 도달하였으나,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다시 철수하여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동준 일병은 중공군의 제2차 공세에 따른 반격 작전에 참여하여 임무를 수행하다 1950년 10월 9일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5판-6면-09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3-ㅈ-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