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준(李東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5830
  • 전몰일자 : 19510607

공훈사항

이동준 일병은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는 위기에 처했던 1951년 1월 5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2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횡성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3월 6일에 횡성을 탈취하고 3월 13일에 용문산 남쪽의 광탄리로 이동하여 홍천강 남쪽 산악지대로 공격하였다. 그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사창리 남쪽의 화악산 일대(지암리 부근)까지 진출했다.
이후 제6사단은 부대정비를 한 후 4월 21일에 대성산-육단리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재개하여 사창리까지 확보하였으나, 이때 4월 22일부터 중공군의 4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후방이 차단되는 등 위기가 도래하자, 적진을 돌파하여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으며, 이어 4월 27일에 용문산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때 제2연대를 홍천강 남쪽에 추진 배치하고 주저항선인 용문산에는 제7, 제19연대를 배치했다.
중공군이 드디어 5월 16일에 대규모 공세(일명 5월 공세)를 시작하자, 제2연대는 사단 전초진지에서 전면방어로 사수했다. 그리고 이동준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와 제19연대는 5월 20일에 중공군의 공격이 중단되자, 즉각적으로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7연대는 5월 24일부터 용문산에서 출발하여 계관산-북배산을 점령한 뒤, 5월 27일부터 춘천 동북방으로 진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현 화천수력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그는 6월 7일에 887고지를 공격하던 중,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0묘역-5판-13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ㅈ-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