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주(이동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000381
  • 전몰일자 : 19500831

공훈사항

이동주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7월 중순경 육본직할 제1유격대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하고 있었고, 제1유격대대는 육본 예비로서 교육훈련 중이었다. 대대는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군 산악 침투부대의 공격을 저지하다 8월 20일 대구에서 제7사단이 창설될 때 제3연대에 흡수되었다. 제7사단은 제3·5·8연대와 제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창설되었다. 이때 이 하사는 제5포병대대에 소속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포병대대는 8월 20일 신령지역의 제6사단과 제5연대를 지원했다. 제6사단은 8월 15일부터 의성군 군위 및 의흥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군위 남방에서 방어하던 제6사단이 적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자, 육군본부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던 민부대(8월 20일 제5연대로 개칭)와 대구에서 재편성 중이던 기갑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했다.
8월 22일 제5연대는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매곡동에서 527고지로 철수했으며, 제6사단 예하 연대들도 적의 압력에 밀려 부분적으로 후퇴하여 주저항선을 370고지-갑령-화산을 연하는 선에 편성하고, 방어지대를 재편성했다. 8월 27일 제5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365고지를 재탈환했고, 제6사단은 적 제1사단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제5포병대대는 포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제6사단과 제5연대에 쉴 새 없이 화력을 지원했다. 이 하사는 포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진을 향해 포탄을 쏘아 올리다, 8월 31일 적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이 전투 결과 북한군 제1사단은 공격력을 상실하고 재편성에 들어갔고, 제5포병대대는 제8사단으로 지원 전환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64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