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주(李東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44129
  • 전몰일자 : 19530418

공훈사항

이동주 일등중사는 경기도 인천광역시 송림군에서 1934년 12월 2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1년 1월 21일에 입대한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을 비롯하여 소속 연대들은 1951년 2월 4일부터 집결과 함께 진격을 개시했다. 아군과 적군은 고지 선점을 위한 수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1951년 2월 11일부터 중공군 제4차 공세가 전개되었다. 적군은 1951년 2월 12일 자정을 기점으로 대병력을 투입하여 아군 전선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제8사단을 포함하여 모든 연대는 중공군에 고립된 채 후방이 포위되었고 포병 1개 대대와 전차 5대로 포위를 뚫고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소부대로 분산되며 철수하게 되었다.
철수를 완료해 부대를 재정비한 제8사단은 1951년 11월 호남지역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전담할 백야전사령부가 창설됨에 따라 공산군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 빨치산 소탕작전을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을 섬멸하고자 하였다. 제8사단은 저지부대와 거점수비대로 포위망을 압축하면서 공비의 근거지를 분쇄하고 반복수색으로 잔당을 색출하는 수색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해 진지를 보수하고 일대의 수색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일등중사는 1953년 4월 18일 진지 순찰 도중 북한군의 포격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주 일등중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7364 육)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5판-4면-320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ㅌ-02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