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주(李東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803066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동주 이등상사는 1930년 8월 15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5일 제4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이 이등상사는 동년 1948년 6월 7일 제1공병대대가 창설되자 동 대대로 전속되었다. 동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 제1공병단이 창설되자 대대는 이 단에 편입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병은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보병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육군본부는 낙동강방어선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이때 이 이등상사는 제1102야전공병단에 소속되었다. 한편, 제2군단은 1950년 7월 12일 경북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의 다부동, 영천 등의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제2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군단은 북진작전 때 제6·7·8사단을 배속받아 작전했다. 제2군단은 진격하는 제6·7·8사단을 지휘통제하며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포천-평강-곡산-평양-개천으로 북진했다. 북진작전 간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 사단들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초산, 희천까지 진격한 제2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2일부터 숙천-성천 선, 평양 북방 선, 예성강-시변리 선, 38도선 상으로 축차적으로 진지를 점령하며 지연전을 펼쳤다.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군단은 중동부 축선을 방어하다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철수하여 인제 남방의 부평리-관대리 간의 방어선을 점령했다. 이때 공병단은 철수로 확보 및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이등상사는 공병 선임하사관으로서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다양한 임무를 완수해 왔다. 하지만 그는 1951년 1월 3일 후방으로 철수 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주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4-ㄷ-1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