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조(李東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31915
  • 전몰일자 : 19521022

공훈사항

이동조 이등중사는 1925년 1월 25일에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되던 1951년 7월 27일에 제주도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조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9월 중순, 제2사단은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8일까지 522고지-477고지-하진현 선을 점령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다가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했다. 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강화라는 목적 외에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훈련이었다.
이동조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대대는 교량 거부 및 장애물 설치 등 전기전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리고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되어 있던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산군은 휴전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쓰며 군사력 증강에 노력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에서는 오성산에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무명능선(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제17연대가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으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이동조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전방연대를 직접지원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항상 공격작전 시에는 최전방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하고, 방어작전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0월 22일 공격작전 시에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을 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5면-18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ㄹ-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