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재(李潼宰)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동재 경사는 1932년 2월 2일 경남 거창군 일운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삼천포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삼천포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하고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7월 26일 경남경찰은 호남과 영남의 연결 통로인 육십령고개를 방어하다가 철수했다. 8월 12일 적이 통영까지 남진하자 경남경찰은 통영에 상륙하여 원문고개에 진지를 구축한 후 14일 고성을 탈환했다. 하지만 야간에 적의 주력에게 포위되어 통영으로 다시 철수하였으며, 8월 말 경남경찰은 진동리지구로 이동하여 미 제25사단의 방어구역을 보강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이 경사가 소속된 경남도경 제36전투대대는 마산에서 창녕으로 진출하였다. 대대는 다음날 화왕산 및 산옥에서 낙오한 적 1개 중대를 포착하고 야간에 적을 기습하여 전멸시키고, 화왕산 관음사에서 북한군 장교 1명과 사병 10여 명을 사살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했다.
10월 14일 새벽 5시 북한군 제2·4사단 패잔병과 공비 등 1,500여 명이 거창군 북상면 북상지서를 기습하고 거창으로 후퇴하는 경찰을 추격했다. 이에 산악지대에서 1주일간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10월 23일 오후 4시 제36전투대대는 돌격전을 감행하여 북상지서를 탈환했고, 적은 덕유산으로 퇴각했다.
이 전투 후 이 경사는 삼천포경찰서로 복귀하여 지역 내 치안유지와 피난민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2월 30일 수 명의 공비가 삼천포경찰서를 습격하였는데,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ㄹ-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