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인(李同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20487
  • 전몰일자 : 19530710

공훈사항

이동인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여수군 실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할 때인 1951년 3월 말,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의 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인 일등중사가 부대로 배치된 5월 중순,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화천-김화를 거쳐 적근산-육단리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공세적인 행동으로 금성-김화 진격전을 감행하여 금성 서남쪽의 직목동까지 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재개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부대이동을 거쳐 1952년 6월 초순에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에 주저항선을 점령했다.
제2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의 작전방침에 따라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저격능선(580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이동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580고지를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함으로써 격전이 벌어졌다. 이후 피아간에 수십 차례에 걸친 공방전이 42일 동안 이어졌다. 결국 사단은 11월 24일에 저격능선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제2사단은 이후 1953년 여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공군 주력이 6월 29일 밤에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에 사단에서는 6월 30일 밤에 제32연대와 제17연대가 역습을으로 다시 281고지를 탈취했다. 중공군들은 일시적으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 7월 6일부터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2차 공격을 실시하여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했다. 이동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그날 밤에 역습으로 281고지를 다시 회복하였으나 다음날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후 5일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7월 10일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인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570 육)을 추서했다. 그의 유해(51묘역-2판-285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ㅂ-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