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의(李東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3375
  • 전몰일자 : 19500918

공훈사항

이동의 일병은 1928년 4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 녹전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소총조작법만을 익힌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의 일병은 진천 북단 백곡천에 투입되었다. 진천-청주 축선은 중서부 지역에서 대전 또는 보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접근로이며, 이 축선에서의 작전은 서측의 경부축선상의 작전에도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축선이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7월 8일 아침 적 제2사단의 전차를 동반한 압도적인 공격을 받아 적을 저지하지 못하고 잣고개로 물러났으며, 진천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후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청주로 철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10일 저녁 청주의 미호천 남안으로 철수하여 새로운 진지를 급편성하였다. 사단의 철수를 뒤늦게 알아차린 적 제2사단은 양천산을 경유하여 남진한 후 11일 아침 무렵 미호천 북방까지 진출하였다. 이후 이동의 일병과 장병들은 13일에 미호천에서 접적이탈을 단행하여 청주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동의 일병과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병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동의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이후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9월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수도사단은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의 일병은 1950년 9월 18일 안강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1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ㄷ-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