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윤(이동윤)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4230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동윤 대위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12월 7일, 육사 8기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교육을 수료하고 1949년 5월 23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경기도 수색의 제1사단 제1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윤 대위가 소속된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12연대를 좌측 개성 일대에, 제13연대를 우측 임진강 일대에 배치해 38도선 경계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1연대는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었다.
이동윤 대위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박 하사는 즉각 방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였다.
이동윤 대위가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도하 저지 작전에 참전하여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부대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고, 그 과정에서 연대가 구축하였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연대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동윤 대위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으나 북한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동윤 대뉘는 1950년 6월 26일 봉일천 지구전투에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윤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229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3묘역-판-8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ㅍ-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