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운(李東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605050
  • 전몰일자 : 19501209

공훈사항

이동운 일등중사는 충청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조국은 1945년 광복에도 불구하고 분단되어 있었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에 그는 조국의 안보 확립에 기여 하고자 1948년 3월 중순에 경북 대구의 제6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일부 부대의 반란 사태와 관련하여 1949년 4월 15일에 부대가 해체되고 제22연대로 개칭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공격을 했을 때, 제22연대는 문산 축선의 봉일천에 투입되어 제1사단을 증원했다. 연대는 7월 5일 평택에서 해체되어 대부분 병력은 제1사단에 편입되었다. 이후 이동운 일등중사는 제1사단 소속으로 지연전과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치룰 때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11월 초순 제2사단이 서울에서 재창설될 때에 후송에서 복귀하여 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제17, 제31, 제32연대를 예하 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제2사단은 지휘소를 가평에 두고 철원, 의정부, 구화리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교란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동운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 수색대는 의정부, 포천, 평강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공세에 호응하기 위해 더욱 후방의 주요시설에 대해 빈번하게 습격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12월 초부터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고, 이에 제2사단은 유엔군의 주력 철수를 엄호한 후 12월 8일부터 상급부대 명에 의거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 장병들은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 등 방어준비에 노력을 집중하였다. 반면 중공군은 정찰대를 보내어 아군의 방어실태를 점검했다. 이동운 일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12월 9일에 방어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중공군 정찰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운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5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ㄹ-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