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운(李東雲)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19175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동운 이등중사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4월 15일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연대는 북한군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5월 8일 험준한 지형과 산악 특유의 짙은 안개로 공격이 지연되었으나 포병의 화력지원을 받아 노동을 감제할 수 있는 972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동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952년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해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장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그는 사력을 다해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그는 앞장서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7월 하조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운 이등중사는 1953년 7월 16일 김화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운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8-ㄷ-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