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욱(李東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6434
  • 전몰일자 : 19510217

공훈사항

이동욱 일병은 평안남도 강동군 삼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8월경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연대의 제2대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0월 25일에 서울에서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2월 17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욱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ㅅ-07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