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욱(李同郁)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15347
  • 전몰일자 : 19520920

공훈사항

이동욱 상병은 경북 영덕군 강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1월 13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과정을 마친 후 1952년 2월 19일 해병대 제3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시된 후부터 유엔군과 공산군은 휴전협상의 추이를 관망하는 가운데 한 치의 땅이라도 좀 더 많이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1연대는 월산령지구 방어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월산령지구는 924(김일성)고지, 1,026(모택동)고지, 1,056고지가 포함된 작전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 작전은 1952년 3월 17일까지 지속되었다.
1952년 3월 17일, 해병대 제1연대는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함께 월산령을 떠나 파주면 적성면의 사천강 일대에 도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4월부터 적진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했다. 우기인 7월부터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적진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낮았던 수위가 복귀할 때에는 수심이 2m를 훨씬 넘는 경우가 많아 화기와 장비를 가지고 도하작전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리하여 아군은 주로 적의 침투에 대비한 매복작전을 실시했으며, 적진에 대한 기습공격은 사천강의 수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우기가 끝나고 9월이 되자 사천강을 가운데 둔 아군과 적은 전초진지를 보강하며 화력지원 하에 기습과 정찰을 연일 실시했다. 적은 아군의 전초진지를 탈취하고자 포병사격 지원하에 약 2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수차례 공격을 했다. 이리하여 피·아 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나 반복되었다. 이 상병은 9월 20일 37전초진지에 대한 역습을 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욱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1묘역-4판-9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ㅍ-05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