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우(李同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52388
  • 전몰일자 : 19521031

공훈사항

이동우 일등중사는 1932년 11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27일에 동두천 북방에 주둔한 제2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우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2월 중순, 제2사단은 안동 부근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후방지역 안정화 작전임무를 완수하고,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5월 공세로 전진을 멈추고 방어로 전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6월 중순까지 육단리-적근산(1073고지)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제2사단은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김화-금성 진격전을 실시하여 522고지-477고지-하진현까지 점령했고,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하진현 일대를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6월 1일에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공산군이 중요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백마고지 등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유엔군도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도록 예하 부대에 명령했다.
이동우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상급부대 작전지침에 따라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먼저 제17연대 1대대가 강력한 항공 및 포병 화력 지원을 받아 공격하여 3차에 걸친 돌격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제17연대와 제32연대는 많은 피를 흘렸지만 교대로 저격능선을 방어했다. 이후에도 중공군 제45사단은 저격능선을 다시 뺏기 위해 수시로 공격했다. 그러던 중 중공군은 10월 31일 야간에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즉각적인 반격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저격능선을 사수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우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773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4판-4면-2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ㅂ-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