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우(李東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94855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동우 일병은 전라북도 정읍군(現 정읍시) 고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3년 1월 17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우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육본 직할로 강원도 고성군 간성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으며 4월 15일 화천군 임남면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에 투입되었다. 이동우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 낡은터와 황병동에 보유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를 보강했다.
이 무렵 중공군은 대규모 하계 공세 준비의 일환으로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제5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후 중공군은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했다.
사단은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3차례 역습을 하면서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어서 사단은 군단 우측의 담당지역을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감우리 부근에 집결하여 부대정비 후, 6월 말에 다시 군단의 우측을 전담방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7월 11일에 전선조정으로 백암산을 포함하여 사단이 담당하게 되면서 책임지역이 확장되었다. 중공군은 7월 13일 제3사단 제23연대를 포위하고 금성천을 도하하기 위해 다음날 소백암산을 방어하고 있는 제35연대 전방으로 공격하여 연대는 7월 15일까지 총 3회의 공격을 받으면서 장재동으로 철수했다.
제35연대는 7월 16일에 소백암산을 공격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공격을 중지하고 수상리 부근으로 이동하여 집결했다. 다음날 연대는 소백암산과 876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돌파하는데 실패하고 급편방어로 전환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우 일병은 7월 16일 분대원과 함께 강원도 김화 일대 소백암산을 돌격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3묘역-1판-69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ㅊ-05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