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우(李東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380
  • 전몰일자 : 19501003

공훈사항

이동우 일병은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마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우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950년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의 8월 공세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공격해오자, 그와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 북쪽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동우 일병과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는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동우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이후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그는 북한군의 9월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수도사단은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동우 일병은 10월 1일부터 양양-간성-양구-화천-회양-신고산-안변을 거치면서 북한군을 소탕하였다. 이 일병은 통일조국을 수립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진격을 계속하였으나 1950년 10월 3일 간성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3-ㅅ-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