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용(李東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23757
  • 전몰일자 : 19530626

공훈사항

이동용 이등중사는 1930년 4월 2일 전라남도 영광군 동월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6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용 이등중사가 전선에 투입될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다.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까지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동용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1952년 10월 1일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동용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7일 동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다. 연대 수색 중대 1개 소대가 텟시 고지로, 사단 수색 중대 2개 소대가 닉키 고지로 각각 진출, 8부 능선까지 도달하여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고지상의 북한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11월에 접어들어 소노리의 상실로 주저항선이 북한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기필코 이를 탈환하고자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병력을 작전에 투입하였다. 공격에 앞서 12개 포병대대가 소노리 고지 일대에 포격을 집중하였으며, 유엔 공군기 B-26 6대가 목표지점을 폭격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3월 6일~3월 7일 317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며, 6월 20일부터 9일간 박·퀸 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않고 전투에 임했던 이동용 이등중사는 1953년 6월 26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용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43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5-ㅈ-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