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옥(李東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06423
  • 전몰일자 : 19520903

공훈사항

이동옥 하사는 1927년 12월 13일 강원도 정선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38도선 일대에서 피·아간에 전선이 교착된 시점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3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전 전선에서 소강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수색 및 정찰전, 간헐적인 포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1월 1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 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기로 합의됨에 따라 감제고지 쟁탈전이 더욱 격화되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확보하고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북한강~석장리 간의 진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이 하사는 9월 3일 분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에 임하다가 적 정찰대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옥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ㄴ-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