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옥(李東玉)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0360307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동옥 병장은 일본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7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동옥 병장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10월 중순, 미 제7사단은 부산에서 원산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사단 장병들은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 부산에서 상륙작전을 준비하여 10월 27일에 출항했다. 그런데 국군 제3사단이 이미 10월 10일에 원산을 점령한 관계로 미 제7사단은 10월 29일에 행정적으로 이원에 상륙하여 11월 8일부터 풍산-갑산을 거쳐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11월 21일에 혜산진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이 장진호 부근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공격하고, 원산 일대를 점령하여 철수로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사단은 11월 27일부터 철수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동옥 병장이 소속된 미 제32연대는 철수 도중에 장진호 동쪽의 중공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하갈우리로 집결했다. 중공군은 장진호 일대에서 포위된 미 해병 제1사단을 섬멸시키기 위해 맹렬한 공격을 실시했다. 미 제32연대는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12월 6일에 돌파작전을 감행하여 8일에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여 고토리에 도착했고, 10일에는 황초령을 돌파하여 진흥리로 향했다. 그리고 11일에 함흥지역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후 미 제7사단은 미 제3사단과 함께 미 제1해병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에 12월 21일에 흥남항에서 출발하여 12월 22일에 부산항을 통해 입항했고, 바로 대구로 진출하여 부대정비를 했다. 당시 대구 북방 지역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잔적들이 게릴라로 변모하여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이동옥 병장이 소속된 대대는 12월 30일에 중대 규모의 북한군 게릴라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옥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5면-16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ㄱ-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