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엽(이동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59172
  • 전몰일자 : 19520307

공훈사항

이동엽 일병은 1925년 1월 10일 전라북도 고창군 광덕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동엽 일병이 훈련소로 전속될 당시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기 직전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적과 몇 차례의 공방전을 전개하던 상황이었다. 휴전회담의 속개와 더불어 전선이 교착상태에 접어들자, 양측은 주요 고지를 놓고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2월 초 반격 작전을 계속하여 중공군을 섬멸하여 적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가하고 고지를 확보하였다.
이후 연대는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고,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부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 정찰활동에 집중했다. 이동엽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수시로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는 3월 4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수집을 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이동엽 일병은 앞장서서 적을 추격하다가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에 후송되었다. 이곳에서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3월 7일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엽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7묘역-2판-196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6-ㄹ-1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