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엽(李東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3272
  • 전몰일자 : 19501221

공훈사항

이동엽 일병은 경상남도 충무군 태평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의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국군과 북한군이 번갈아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이동엽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청송-평창-양양방향으로 진격하였다.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으며,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기습공세가 시작되었다. 원산탈환작전을 완료한 이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영흥-함흥-성진 진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진격 전에서 이동엽 일병과 연대병력은 함흥 등 요지에서 아군의 진격을 지연하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하던 북한군 제42사단 및 원산경비여단, 제5사단을 격파하고 16일 함흥, 30일에는 성진을 점령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11월 말에는 길주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이때 북한군이 반격해 오면서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2월 14일 북청과 이원에서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적 병력을 앞장서서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했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이동엽 일병은 1950년 12월 21일 양양 부근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엽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ㅁ-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