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열(李東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3323
  • 전몰일자 : 19500630

공훈사항

이동열 일병은 경상북도 김천군 황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제7사단에 입대하여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적 주공방향으로 판단된 의정부 축선의 양주군 적성에서 사직리까지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입대한 이후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그는 진지공사와 훈련, 경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공병대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북한군은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공병대대는 즉각 제9연대 지역에 투입되었다. 연대 정면에는 철조망과 목책 장애물은 설치되었으나 지뢰는 매설되지 않은 상태였다. 적의 기습공격에 공병중대는 추가 장애물을 설치할 여유도 없이 제9연대 장병들과 함께 보병전투에 휩쓸렸다. 사단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개전 첫날 포천을 내주었고, 26일에는 동두천, 의정부가 함락되었다. 사단은 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분전했으나 적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대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28일 노량진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사단장은 공병대대에 반파 상태인 한강철교를 완전히 절단할 것을 명령했으나, 폭파자재의 부재와 북한군의 방해로 교량폭파에 실패했다. 6월 29일부터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편성되었고, 공병대대는 혼성 제7사단 지휘 아래 노량진 강안에 배치되어 적의 도강을 저지하며 분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무릅쓰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6월 3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7판-2면-0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ㅇ-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