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열(李東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688
  • 전몰일자 : 19500727

공훈사항

이동열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양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5월 중순, 강원도 원주의 제6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춘천에 주둔한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당시 제7연대 는 북한군 침략 징후가 농후한 가운데 방어 준비에 집중했다. 그는 공병(工兵)으로서 보병들의 장애물 설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적인 남침을 했을 때, 이동열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곧바로 전방 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장애물 설치와 폭파에 중점을 두고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침략해 왔다. 제7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을 6월 27일까지 춘천 전방에서 저지했고, 이날 오후 1시부터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로 이동했다.
제7연대는 7월 1일에 육본 명에 의거 충주로 이동하면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9일까지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동열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7월 11일에 음성 지역의 장애물 설치지역을 국군 제1사단에 인계하고 이화령 일대로 이동하여 장애물 설치를 했다. 이후 제7연대는 7월 12일에 이화령에서 공병이 설치한 장애물을 이용하여 충주-문경-함창 방면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1사단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제7연대는 7월 16일에 문경 방어를 포기하고 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조봉, 어룡산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했다. 북한군은 7월 25일에 제6사단 방어지역의 중앙을 돌파하고자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강력히 저항했으나, 계속 증강된 북한군의 공격으로 함창으로 철수하며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동열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적극적인 장애물 설치로 제7연대의 전투를 지원했다. 그는 7월 27일 전투에서 공병 지원을 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2면-0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ㅌ-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