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언(이동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978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동언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할 무렵인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18사단에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소속 제18사단은 당시 없는 부대이므로 제18연대로 조정).
한편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7월 5일부로 이동언 일병이 소속된 제18연대는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수도사단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 영일군 기계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혈전을 거듭한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동언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9월 15일 실시된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9월 18일 안강을, 9월 21일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사단은 9월 30일 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고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여 함흥을 점령(10월 17일) 후, 10월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여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계속 북진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1월 30일 흥남으로 철수했다. 이 진격전에서 이동언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11월 26일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건강을 회복하여 1951년 3월 중순경 부산에 위치한 제2훈련소 조교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 일병은 신병양성에 주력하면서 부산 지역에 출몰하는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투입되었다. 1951년 5월 19일 부산항 인근에 게릴라가 출몰해서 훈련소 기간요원들은 출동하여 이들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언 일병은 적을 추격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6판-8면-2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6-ㅎ-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