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언(李東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485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언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4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특별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하였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또한 서울 특별연대는 제1사단에,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속된 육사생도대대는 제7사단에,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에, 제2교도대대는 제7사단에, 독립기갑연대 제1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과 제8사단에 배속하였으며, 다음날 저녁 무렵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하였다.
이동언 일병과 장병들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일시 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이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한강선 방어전투를 전개하였다.
이동언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 전차부대에 맞서 싸우다 중상을 입고 제18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회복하지 못하고 1950년 6월 25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5판-7면-23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9-ㄱ-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