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실(李東實)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501887
  • 전몰일자 : 19500728

공훈사항

이동실 하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1949년 5월 1일에 경기도 부평의 육군병기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배치되어 병참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어 사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 장병들은 원주에서 아침 7시를 기해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이동실 하사가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선발대로서 오후 1시에 차량에 탑승하여 원주에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제19연대 본대는 기차로 원주에서 출발하여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와 협조로 소양강 북쪽의 진지를 점령했다가 이날 오후에 소양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동실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6월 27일 새벽 5시에 북한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때 사단 명에 의거 오전 10시에 현 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차량 이동으로 오후 7시 30분에 홍천 북방의 말고개로 투입되어 제2연대를 증원했다. 이곳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 4시에 홍천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제19연대는 7월 1일 밤 12시에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이천지역으로 투입되어 7월 4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연대는 이날 정오부터 철수하여 진천 북쪽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7월 9일에 진천 지역을 수도사단에게 인계하고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복귀했다.
제6사단은 7월 12일 아침 5시부터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했다. 이동실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조령에 배치되어 7월 14일부터 문경-점촌 일대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에 맞서 지연전을 실시했다. 제6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영강에서 하천선 방어에 돌입하여 7월 28일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날 영강전투에서 그는 병참하사로서 전투물자 수송업무를 담당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실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38-ㅅ-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