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李東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67824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동식 하사는 1931년 4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2월 5일 제주도 서귀포시 모슬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다. 당시 국군은 전투 병력을 안전하게 양성하기 위해 대구에 있던 제1훈련소를 제주도로 이전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3년 초 당시 상황은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쌍방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 후 전선 정비를 하면서 3월까지 방어력 강화와 공세 역량의 축적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동식 하사는 전선에 배치되어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 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7월 하조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휴전이 임박했던 1953년 7월, 금성지역 북방의 중공군은 6·25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중부 전선에 돌출되어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 하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이동식 하사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최후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였으나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1953년 7월 16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2086 육)을 추서하고 위패(44판-4면-0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8-ㄴ-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