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李東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39856
  • 전몰일자 : 19511001

공훈사항

이동식 하사는 평안남도 평양시 능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1년 4월경에 입대한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하기 전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평안남도 강동군 흑령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을 방비했다. 후에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1년 2월 5일 횡성 부근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중공군의 2월 공세로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에서 주포리로 흩어지며 철수하였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부대를 재편성하고 1951년 4월 3일 전주로 이동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제8사단은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하여 1951년 7월 20일 인제군 원통리 북방 노전평지구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1년 7월 말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때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수립하는데, 계획의 핵심은 공산군이 점령하고 있는 국군 방어선 남쪽의 해안분지 탈취였다. 주요 사단이었던 제8사단 제10연대의 공격은 1951년 8월 9일 오전 5시 노전평의 북한군 전초진지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1년 8월 9일부터 8월 24일까지 중동부전선인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1, 2차 북한군 4개 사단과 고지 쟁탈전을 치르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2차 전투 후 965-1031고지 선에 전진 진지를 구축하며 캔자스선 중심으로 확대한 반면, 북한군은 패배한 2개 사단 대신 제15사단을 투입하여 802-85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제10연대는 1951년 9월 10일 사단의 조공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751고지로부터 무명고지를 향해 진격하여 854고지 북쪽의 무명고지 기슭까지 진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했고, 이 하사는 이 과정에서 1951년 10월 1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1묘역-2판-154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ㅂ-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