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李東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72077
  • 전몰일자 : 19521013

공훈사항

이동식 일병은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진행 중이던 1951년 12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2사단은 1952년 2월 초순에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美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 해제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야외기동훈련(FTC, Field Training Course)으로 전투기술을 연마했다. 이 훈련은 당시 미 제8군사령관이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강화와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전기전술 숙달훈련이었다. 또한 일부 병력은 후방종심지역에 침투하여 교란활동을 일삼던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멸하는 수색작전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제2사단은 6월 1일부로 제9군단에 재배속 되어 군단의 예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에 美 제40사단 방어작전지역을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책임지역 방어진지 보강 공사와 적 침투활동을 거부하기 위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이동식 일병이 소속된 중대는 8월 28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루며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식 일병은 중대원과 함께 적을 색출하여 교전 중 중상을 입고 전라남도 광산에 위치한 제7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곳 병원에서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13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8-ㄴ-00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