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이동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4796
  • 전몰일자 : 19501229

공훈사항

이동식 일병은 1933년 8월 21일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북방에서 1차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공세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단은 덕천 일대까지 진격하여 공격준비를 하던 상황이었다. 11월 14일 사단은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24일 험악한 산악지형을 뚫고 묘향산 남방의 성불참, 하령곡산, 사항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은 11월 25일 제2차 공세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중공군 제38·42군의 저항이 강력해졌고, 적의 대규모 공격을 예상한 사단은 급편방어로 전환했다.
26일 중공군 제42군단이 사단과 제8사단 간의 전투지경선을 따라 집중 돌파를 함에 따라 각 부대들이 퇴로가 차단당하거나 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고, 사단사령부도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아 지휘통제 기능이 상실되었다. 27일 사단은 적의 측후방 공격을 막느라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악전고투 끝에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수색중대는 금곡령 일대에서 사단 우측방 경계임무를 수행하다 적 연대 규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수색중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워낙 병력 수의 차이가 크고, 측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다 보니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고 분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색중대는 측후방 경계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이 무렵 적은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제2전선부대를 중동부 축선에 침투시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북한군 제2군단 예하부대들이 침투했고, 아군 부대와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일병은 12월 29일 후방지역 수색정찰 중에 적과 조우하자,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ㅎ-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