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李東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2829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이동식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1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 중이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북진을 계속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진격했고,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연대는 평창, 영월, 제천, 하진부리, 현리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 제3~제5차 공세를 막아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수도사단에 현 지역을 인계한 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서희령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고,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연대는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11월 17일 전투정찰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6판-6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ㄹ-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