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식(이동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118978
  • 전몰일자 : 19530710

공훈사항

이동식 소위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소위는 장교를 지망하여 전남 광주에 위치한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갑종 장교반 교육훈련을 받고, 1952년 1월 19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 소위는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1월 12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 일부를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주저항선과 전초진지에 대한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 실시했다.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 서전으로, 1953년 4월 2일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4월 20일 제5사단에 전선을 인계한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전환되어 화천의 사방거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식 소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53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5묘역-4판-3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ㅁ-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