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숙(李東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55922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이동숙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 및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숙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서울에서 재창설되어 가평으로 이동하였고, 예하 부대는 철원, 의정부, 구화리,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 주력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인 12월 중순, 사단은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멈추고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서 임박한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과 철조망 설치 등 방어준비 강화에 여념이 없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그는 사단 장병들과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을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적을 상대로 전투하며 차단선을 돌파해야 했다. 이동숙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1월 3일에 청평에 도착하여 여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미 제10군단 예비사단으로 풍기에서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을 경계하다가 2월 12일에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 및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이날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일원산 일대에 대한 수색작전을 하던 중 1개 소대 규모의 적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4면-0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ㅍ-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