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803306
  • 전몰일자 : 19510720

공훈사항

이동수 하사는 경상남도 거제군 장승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하사는 일어섰다. 그는 9월 초순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가 입대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3사단은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북한군을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작전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부터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가리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강원도 양양, 고성 일대에서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하사는 전투마다 솔선수범하여 진두에 나섰고, 보급로 경계 간에도 앞장서다가 7월 20일 고성에서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ㅅ-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