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797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동수 중위는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중순경 경상남도 동래에 위치한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수료한 후 12월 9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리고 제5사단 공병소대장으로 전속되었다.
이동수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사단은 11월 27일부터 육군본부 통제하에 철의 삼각지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이동수 중위가 소속된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12월 5일경 전방지역인 38도선 상의 춘천 북방에 투입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서 철수하는 아군의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사단의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하여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동수 중위는 중공군의 신정공세 시 춘천 북쪽 방어진지에서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전방연대 장애물 설치를 지원하던 중 1951년 1월 1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그는 전사 후 소위에서 중위로 추서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7면-1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ㅇ-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