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0562
  • 전몰일자 : 19510310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경기도 시흥군 안양면(現 안양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공세를 힘겹게 저지하고 있던 1950년 12월 초순경 입대하여 구월산유격부대가 창설되면서 同 부대로 배치되었다.
구월산유격부대는 1950년 12월 김종벽 대위가 창설하여 6.25전쟁 당시 황해도 구월산을 거점으로 반공 유격활동을 벌인 부대이다. 구월산유격대는 김종벽 대위가 부대장을 맡아 1950년 12월 창설했으며, 본래의 이름은 '연풍유격대'이다. 창설 당시 규모는 6백 명 정도였으나 1951년 초에는 2천5백 명으로 늘어났고, 휴전직후 부대가 해체될 때까지 8백 명 규모를 유지했다.
유격대의 거점이 된 구월산이 부대의 거점이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북한이 공산화하자 200여만 명이 남으로 피란했으나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무장항쟁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항거가 거셌다. 북한군의 징집을 거부하고 구월산에 모인 가톨릭 신자들은 전쟁 전날 밤 주임신부가 납치되자 격분하여 유격대에 합류했다.
이동수 일병이 소속된 구월산유격부대는 1.4후퇴 때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구월산 일대에 잔류하면서 유격전을 벌였다. 이후 유격대는 1951년 3월 연풍부대가 구월산부대로 개편된 뒤 서해지구, 초도, 석도, 웅도, 청양도, 상취라도, 하취라도, 피도, 능금도 등지에서 도서방위와 공격활동을 벌였다. 유격대는 중공군과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또한 수십 명의 여성 대원들이 빨래를 너는 방법으로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거나 대원들의 생필품을 조달하면서 전투를 도왔다. 그 중에서도 무장대를 조직하여 아군 89명을 구출하는 등 전공을 세워 육군 총참모장 표창을 받은 이정숙 대장의 활약이 알려져 있다.
계속해서 유격대는 후방 교란의 임무를 수행하며 다수의 북한군과 중공군을 사살했다. 이동수 일병은 3월 15일 황해도 은률군 청양도에서 분대원과 함께 북한군 상륙부대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1판-6면-1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ㅇ-07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