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858
  • 전몰일자 : 19501006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의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동수 일병은 낙동강방어선의 안강 지구에 투입되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낮에는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고,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이동수 일병이 소속된 기갑연대는 M8장갑차 27대를 장비한 장갑수색대대, 마필 300대가 편성된 기병수색대대, 도보수색대대 등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육군직할 독립부대로 운용되고 있었다. 기갑연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편입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의 해체된 병력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어 9월 16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세를 물리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 및 북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이동수 일병과 연대병력은 2일 원통-양구로 공격하였으며 동해안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기동로의 전환은 동해안 도로상에 2개 사단 6개 연대의 부대가 집중되는 취약점을 덜고 태백산맥 동측에서 준동하는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최선봉에서 용맹을 발휘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동수 일병은 1950년 10월 6일 양양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3-ㅈ-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