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이동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0818
  • 전몰일자 : 19510814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1933년 6월 28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30일에 입대 후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제16연대는 1951년 2월에 접어들어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주 접근로에 적의 공격을 방비했지만, 중공군의 공세에 봉착했다.
이 이병이 속한 제8사단 제16연대는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서, 강원도 횡성군에서 전력의 70%를 상실하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제8사단 지휘부를 비롯한 장교 300여 명과 사병 7000여 명이 전사·실종되고,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했다.
횡성전투 이후 국군 제8사단은 원주 남쪽의 주천리로 물러나 일단 부대를 수습한 다음 다시 대구로 이동하여 재편성을 시행한 후 후방의 공비토벌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횡성 남쪽의 원주와 지평리로 진출하여 2월 공세를 계속하였으나 지평리에서 이들의 공세는 저지되었다.
제8사단 제16연대는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5월간 호남지구의 공비토벌 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제16연대 장병들은 제10연대 장병들과 함께, 지역의 제18전경대대, 청년방위대 제153지대와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8사단 제16연대는 공비토벌 이후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이후 휴전회담기간 전선의 소강에서 미군 제10군단 제2사단 등과 공격을 개시했다. 제16연대의 공격은 1951년 8월 9일 오전 5시 노전평의 북한군 전초진지 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좌전방 제16연대는 제3대대로서 451고지-무명고지를 공격하고 다음 날 아침 제10연대 제1대대의 측방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재개하여 마침내 탈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역습도 만만치 않아 한때 785고지와 1010고지가 북한군에게 대대가 피탈된 고지탈환에 나서 14일까지 785고지와 1010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1년 8월 14일 북한군과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1묘역-5판-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ㄱ-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