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이동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3925
  • 전몰일자 : 19501127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경기도 강화군 서면 동오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5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무렵, 제8사단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해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게 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 후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총반격 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부대를 정비하고 1950년 9월 20일부터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해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8일에는 제8사단을 선두 부대로 하여 초성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돌파해 북한군 제27사단의 일부 병력을 격퇴하면서 전곡에 진출했다. 이후 계속 진격하여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제7연대의 엄호를 맡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제8사단은 불리한 전세에 영원으로 철수하여 맹산에 지휘소를 설치했으나 우회하는 중공군과 맞닥뜨려 교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교전이 장기화되고 적군이 계속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할 수밖에 없어 제6사단과 임무를 교대하고 군단 예비대로 소속되어 은산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1월 27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ㅍ-03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