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801618
  • 전몰일자 : 19510309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9월 공세 때 영천 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쳤으나, 11월 하순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사단은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동북방에 배치되었던 사단 장병들은 분전하다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으나, 영월에서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이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했고, 사단은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의 장애물을 제거하며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진하다 적탄에 맞아 3월 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40판-2면-0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ㅇ-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