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이동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800524
  • 전몰일자 : 19530516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7월 6일 군에 입대하여 민부대(민기식 부대)에 배치되었다.
민부대는 호남지역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남진을 지연했고, 8월 1일부터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적의 마산 방면 진출을 저지했다. 민부대는 제7사단이 재창설될 때 제5연대로 개편되었다. 북한군 8·9월 공세 때 사단은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이 일병은 영천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말경에 부상에서 회복되어 제7사단 본부중대에 배치되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사단은 영월 일대까지 철수했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1951년 2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 장병들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8월과 9월 동안 양구 북쪽의 백석산 일대 전투에서 격전을 치렀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백석산 주봉 탈취에는 실패하고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에 임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후 사단은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1953년 5월 16일 사단 사령부 경계 중에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ㅊ-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