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同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38313
  • 전몰일자 : 19510922

공훈사항

이동수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효목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신녕의 제6사단으로 현지에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항상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거나, 적 지휘소 및 탄약고 등을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동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신녕 북방의 국통산과 370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10월 5일에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26일에 압록강 초산까지 진출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제6사단은 전곡-백의리를 잇는 방어선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에는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2월 초에 방어배치 조정에 의거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마지막 반격은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화천)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제6사단은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적근산-백암산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동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9월 22일에 적진에서 활동하던 중 적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6판-6면-1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ㅌ-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