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3801099
  • 전몰일자 : 19520216

공훈사항

이동수 이등중사는 경기도 김포군 황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한 후 2차 총공세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혼란에 빠져 있던 1950년 11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수 이등중사는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중공군의 주공이 예상되는 고랑포 정면 임진강 남쪽의 장파리-마포리-도감포 일대에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이 이등중사와 연대 병력은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 당하였고 이로 인해 부대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1951년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연대병력은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으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2월 28부터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 일대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다.
이동수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여 중공군을 격멸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수 이등중사는 1952년 2월 16일 두매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279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7면-354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ㅈ-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